사실 사람을 사랑하려고 마음 먹는다고 미워하던 사람이 한순간 이뻐 보일수는 없다. 어떤 경우는 특히 이해 할수 없다. 그러나 최근 아빠가 되면서 내가 미워하던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들이고 딸일거라는 생각이들었다.
‘내가 그 사람의 아빠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‘라는 생각을 해보니 치밀던 분노도 어느덧 사라져버렸다. 그리고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화를 낼때 화를 내고 기뻐할때 같이 기뻐해주는 것도 정말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 부모님께서 마음아퍼하면서 야단쳐주셨듯이 나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아닐까?
같은 이유로 내가 너무 작아보이고 사랑스럽지 않을 때도 내가 ‘나’라는 아들 혹은 딸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이 ‘나’라는 아이를 잘키울수 있을까라고 물어보자. 그러면 어느새인지 모르게 자기 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 ‘나’가 나와서 지금의 나에게 안길 것이다. 토닥여주고 복돋아주자. 나도 그 언젠가 어린날 나의 부모님에게 소중한 아이였으니까 말이다.
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내 자신을 만날때 나 혹은 다른 사람이 완벽할 거라는 전제 조건에서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 하다.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옳은데 상대방은 왜 이해를 못하지? 아니면 내가 그리는 모습은 이러한데 지금의 나는 왜 이렇지? 이때 ‘내가 그 사람의 아빠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‘ 라고 나 혹은 상대방에게 완벽하지 않을 기회를 주자. 그러면 조금이라도 그 사람 (내 자신)을 사랑하고, 설사 그렇게 까지는 아니라도, 이해할 수 있는 여유 만들어 줄수는 있는 듯 하다.
(지금 대인관계로 힘든 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되는 방법이길 기도드립니다.)